한국JC 연혁 History of JC


1951년

처절한 6.25동란으로 조국이 시련을 겪고 있던 시절에 당시 평택에 주둔 중인 미 제5공군 정훈 장교 “메닝스포츠우드”중위로부터 JC에 대해 소개를 받은 12명의 젊은이들이 전화로 피폐된 조국을 재건하고 회원상호간의 자치 사업 수행 능력 향상을 유도하며 나아가 선량한 시민을 양성하여 민족의 민주주의적 장래발전을 보장하는데 발기의 목적을 두고 12월23일 경기도 평택시에서 당시 영어 교사였던 서정빈씨를 정점으로 최초의 발기모임을 가졌다.


1952년 2월

강건원씨를 초대회장으로 한 “평택청년애향사업회”를 결성, JCI에 지방 찹타로 가입하였으며 그것을 기회로 하여 동년 11월 부산 피난 임시 수도에 “부산청년애향사업회”가 결성되었다.


1953년 6월

JC이념의 근간인 JC신조를 우리말로 번역 조직활동의 지표로 삼았다.


1954년 3월 10일

평택, 부산, 수원의 3개 LOM을 가지고 JCI에 국가 단위 조직으로 정식 가입한 “평택청년애향사업회”는 동년 4월 JCI KOREA로 명칭을 개칭, 조직의 제2창립을 맞이하였다


1964년 4월 18일

JCI KOREA가 외무부로부터 법인허가 취득(1964. 4. 18, 허가번호 : 제 107호)


1964년 5월

JCI KOREA 최초로 JCI 아태 컨퍼런스를 서울에서 개최 국제화로의 발돋음을 시작했으며, 8월 이사회에서는 3월19일을 JCI KOREA의 날로 제정하였다. 더욱이 이해에는 JCI KOREA 노래의 제정, JCI KOREA 신문의 창간, 전국회원대회의 최초 개최 등 JC의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67년 6월

JCI KOREA 특우회를 창립하고 지방JC 조직 관리를 위한 지구 협의회를 설치 운영하였으며, 회원의 자질 향상을 위한 JC연수가 시작되어 중앙 연수원이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1972년 4월

JCI KOREA 회원의 활동 지침인 강령이 제정되고 각 지구의 협의회의 명칭을 지구JC로 개칭 자치권이 부여되었다.


1974년 6월

평택에 JCI KOREA 창립 기념탑을 건립, 창립 당시의 뜻을 되새기기도 하였다.


1975년 10월

제1회 한국청년대상을 시상하고, JCI KOREA 중앙 사무국이 서울 수송동으로 이전, 독립된 회관 건물을 임대 업무를 수행하였다.


1977년 8월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자체 회관을 구입하였다.


1979년 6월

새마을 유치원의 탄생동기가 된 골목 유치원을 전국적으로 개설 운영하였으며, 동년 6월 제1회 한국 농어민 대상을 시상, JC가 국민과 함께하는 사업의 시발점이 되었다.



1980년 2월

JCI KOREA회원의 입문 코스인 훈련원 제도가 시행되였으며,


1982년 8월

전 회원의 숙원인 JCI KOREA 회관을 현재의 위치인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건립하고 동년 11월, 제3차 JCI의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개최, 비로서 JCI KOREA가 대내·외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1985년 1월

조직의 전성기를 맞아 지방화, 민주화, 국제화를 선언, 성숙한 JC를 통한 성숙한 사회구현에 앞장섰으며, 도서출판제이씨를 설립해 회원의 가치 향상에 이바지 하였다.


1986년 10월

청년세계 잡지를 창간, 명실상부하게 청년의 의식을 대변하였다.


1988년 9월

'88서울올림픽 문화예술 행사의 하나인 세계 전통 문화 및 음식 축제를 주관, JC가 한국을 구체적으로 알리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1989년 10월

소련 청년조직위원회와 교류 조인을 체결하여, 민간적 사업을 수행하였고 조국의 미래를 위한 청년의식 설문조사를 실시, 청년의 미래적 좌표를 제시하였다



1990년 4월

재일 한국인 법적지위 보장 촉구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1백 67만명이 서명한 서명록을 일본정부에 전달, 재일 교포의 법적지위 향상을 기하였다.


1991년 7월

세계청년 모의 UN총회에 JCI KOREA가 부의장국으로 참석, JCI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으며, 남북한 UN 동시가입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또한 회원의 지도력 배양을 위해 중앙대학교 국제 경영대학원에 JC최고 지도자 과정을 개설 JC의 미래 지도자 200명을 배출하였고 동년 12월 JC의 미래 구상을 위한 재단법인 한국청년정책연구소가 설립되었다.


1992년

창립 제 40주년을 맞이한 JCI KOREA는 사회현실 참여 운동으로 범국민 환경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 국민적 환경의식을 고취하였으며 최초로 JCI KOREA가 세계연차표창을 시상하였다. 또한, 8월에는 한국보이스카우트와 자매 조인을 체결, 사회단체와의 연합을 시도하였다.


1993년

JCI B지역 NOM회장 및 임원 세미나를 제주에서 개최하였고, 동년 5월 아·태대회에서 1995년 JCI 아·태 지역대회를 제주에서 유치하는데 성공하였으며, 11월 1996년 JCI 세계대회를 부산에서 유치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1994년 6월

21세기 미래를 창출하기 위한 어린이 물물교환 장터를 개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자원의 절약과 근검정신을 깨우쳐 주었으며, 조직기구의 축소를 통한 내실을 기하였다.


1995년 5월

제45차 JCI 제주 아·태지역대회를 제주에서 개최하여 JCI내 JCI KOREA위상을 더함은 물론 한국과 제주를 아·태회원국에게 알리는 좋은 계기를 마련하였다. 더욱이 세계가 경제 블록화 되어가는 시점에 아·태지역간의 경험증진을 위해 아시아·태평양 경제인 연합회를 창설 아·태경제의 발전을 다짐하기도 하였다.


1996년

유치 3년의 준비, 노력 끝에 JCI 제51차 부산 세계대회를 전세계 회원국 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무지개 다리(Rainbow bridge)"를 활동으로 실천하여 JCI이념을 한국에 알리고 JCI KOREA활동이 국내에 홍보되는 위상 구축의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탄탄한 조직력과 활기찬 활동으로 지역사회와 국가 발전에 힘써 온 JCI KOREA는 뜻깊은 창립45주년을 맞이하여 16개지구, 375개 지방JC에 정회원 2만4천명과 특우·부인·유스JC회원을 포함한 6만회원이 활동하는 국내 최대의 순수 민간 단체로 성장 발전하였다.


1997년

97년 JCI KOREA의 주어진 시대적 사명감을 이루기 위해 JCI KOREA는 JC의 힘으로 미래의 열린사회 구축하고자 조직의 재교육화, 재조직화, 재통합을 주창하며 총력을 기울였다.


1998년

맑은 정신 청년의 패기 - 인간 존중사회의 실현을 위해 인간사랑실천운동의 전개, JC이미지 구축, 조직역량의 배가를 3대지표로 설정하고 16개지구, 379개 지방JC 2만5천의 현회원과 특우회, 부인회, YJC와 더불어 진정 이시대가 요구하는 청년 단체로 성장할 것을 약속하며 국내 최대의 순수민간단체로 성장 발전하였다.


1999년

"청년이 강한 나라 대한민국 - 변화의 시작, 조용한 혁명!"이란 슬로건으로 시작한 1999년도는 새로운 천년을 위한 JC란 대명제 아래 새청년상 정립을 위한 청년운동과 조직효율화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현안문제를 극복하고 종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한해가 되었다.



2000년

"21세기 - 새로운 천년 JC DREAM" 이라는 슬로건 아래 대망의 2000년 청년의 웅대한 꿈을 펼쳐 복지, 정보, 문화가 중심이 되고 국제활동에 중심을 두는 한국JC 운동을 추진 2002년 월드컵 성공적 개최의 기반이 되는 문화시민운동과 한-일 주니어 사커 페스티발 개최 월드컵 붐을 조성하였고 사랑의 메신저 운동을 중국연변의 동포들에게 확대 실시 하였다. 그리고 한국JC는 희망찬 사회건설에 역할을 다함으로써 국민의 굳건한 신뢰를 쌓았다.


2001년

JC가 우리나라의 뿌리를 내린지 50년이 된한국JC는 <비전21-반세기 역사, 새로운 만남, 강한JC>라는 슬로건으로 조직의 재정비를 통한 강한JC를 이룩하였다. 따라서 한국JC의 근본인 지방JC를 적극 지원 지방JC의 우수한 사업을 발굴 지원하고 JC 마켓팅화를 추진 조직역량을 극대화 하였으며, 대외 활동을 강화 한국방문의 해에 개최되는 2001 JCI 대구 아태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뤄 한국JC의 역량을 대외에 알렸다. 이러한 조직역량강화와 대외 활동의 강화를 통해 강한JC의 기초를 다졌다.


2002년

한국JC 창립 제5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와 전통을 계승ㆍ발전시키고, 새로운 변화를 통해 조직의 체질개선을 시도하므로서 새로운 50년을 향한 미래의 창조를 표명했던 한해 였다.


2003년

"청년의 아침"이란 슬로건으로 찬란한 50년사의 금자탑 위에서 새로운 50년을 향한 첫발을 내딛는 해로서 조직적 가치관 확립과 일반적 JC관 정립을 통해 BEST-WORST 운동을 실시함으로서 "조용한 동방의 아침"의 나라를 짊어져야 할 청년의 아침을 여는 주인공이 되기 위한 한해였다.


2004년

"청년의 자존심"이라는 슬로건으로 조국의 관심과 보호 영역 밖에서 힘든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재외 한인동포들을 위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지원사업을 수행하고자 특별사업팀을 신설하여 한국JC 활동의 폭을 넓혔고, 대북지원 사업, 사랑의 메신저운동, 몽골 심정지하수 개발 사업 등을 수행하였으며,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과 관련한 중국의 고려려사 왜곡에 대응하여 국제학술대회를 통한 민족의 정체성 확립의 노력을 수행한 한해였다.


2005년

2005년 "Back to the Basic"이라는 슬로건으로 기본으로 돌아가 원칙과 이념에 충실한 JC만들기, 창조적 파괴와 아래로부터의 혁신, 회원속으로, 지역속으로 파고드는 강한 JC로 거듭나기 위한 도약의 한해였다.


2006년

한국JC 회관 준공 24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실시, 지금의 현대식 회관으로 탈바꿈했으며, 96년 부산 세계대회에 이어 10년 만에 제61차 JCI 서울 세계대회를 성공리에 개최, 한국JC의 저력을 세계 만방에 과시한 한 해였다.


2007년

창립 55주년을 맞이하여 ‘청년리더양성단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아젠다7’ One+KOREA 출산장려운동과 클린피아 운동, 노인일자리취업박람회,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 캠페인, 중국 조선족 소학교 장학사업 등을 실시하여 대.내외적 이미지를 향상과 조직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2008년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 이란 슬로건 아래 지방JC의 활성화를 위하여 ‘비전08 로칼 발전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조직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한편, 청와대 방문, 남북교류사업, JCI 부산아태대회, 사랑의메신저운동 10주년 기념사업, 조선족 소학교 장학사업과 축구대회, 제18대 총선에서 JC출신 24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써 대·내외적인 JC이미지를 향상시켜, 조직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2009년

올해 한국JC는 '열정을 깨우는 바람'이라는 슬로건 아래 잠자는 회원들의 열정을 깨우고 신바람나는 JC의 활동을 고무하여 행동하는 청년단체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고자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다문화가정 융합과 출산장려 운동, 새터민지원사업 등을 주제로 한 '파워비전10' 핵심사업을 회원들과 함께 풀어가면서 실천하는 청년리더단체로서의 위상을 제고하고자 한다.